2013년 10월 9일 수요일
블루 자스민
본지 일주일도 넘었지만 요즘 너무 잘 잊어버려서 날라가기 전에 써둔다.
매치포인트 이후 오랜만에 재밌게 본 우디알랜 영화였다.
미드나잇 인 파리도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영화를 본다기보다 구경하는 느낌.
최근 영화들이 그랬다.
케이트 블랑솉 (이 사람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게 맞는지 맨날 모르갔으)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연기한 쟈스민은 호수가 있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승마를 즐기고, 하는 일이라곤 가구 바꾸기, 파티 주최, 쇼핑이 전부였던,
부자 남편을 둔 초초초 상류층 마나님이었다.
남편의 자식인 의붓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하바드에 입학한 모범생으로 그녀와 잘지냈다.
쟈스민의 세상은 반짝반짝 빛났는데...
알고보니 남편은 기업&금융 사기꾼이었고 에프비아이가 잡아간다.
그 후 전재산도 탈탈 털린다.
쟈스민은 루이비통 여행가방에 명품 옷, 가방, 장신구를 챙겨넣고
가난한 여동생 집에 신세지러 온다.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돈도 없다면서 어떻게 퍼스트 클래스를 탔냐고 다그치는 동생에게
그냥 탔다고 소리치던 쟈스민을 보고 이 영화에 반했다.
케이트 블랑쉐의 신경쇠약+분열+우울증 연기가 넘 좋았다.
병원에서 접수보는 알바를 하면서도 샤넬자켓에 버킨백을 유니폼처럼 입고 있는 디테일도 좋았고.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망상을 보며, 허공에 대고 분노하는 위태위태한 정신.
한 시간 반 동안 그녀가 망가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우디알랜 스타일의 유머 덕분인데
여동생의 멍청이 남친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과
남친이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 4인의 대화는 정말 웃기는 씬이다.
웃김은 쟈스민의 강한 현실부정에서 오는 셀프 안드로메다화에서 오는데
이게 우디 알렌이다.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던 상류층 남자와의 결혼이 날아간 후,
사라졌던 의붓아들을 찾아간 쟈스민은 부정하고 외면했던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 내내 사용되었던 플래쉬백은 현실도피용 기억재생의 형태로 끼어드는데,
아들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들은 후에야 외면했던 그 날의 일을 떠올린다.
이 플래쉬백 반전은 저릿한 여운을 준다.
인생 곳곳에는 저런 식의 스스로 판 함정이 숨어있는거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젖은 머리에 샤넬 트위드 자켓을 입고 벤치에 멍하게 앉아 있던 쟈스민의 마지막 모습을
지난 십여일 동안 자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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